[데스크연재④]겉만 핥아대는 한국형 타당성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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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④]겉만 핥아대는 한국형 타당성조사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0.11 10:05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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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예타, 사업비 증액 불가피
해외, 정확한 금액산정으로 비용 최소화
개발시대 공무원 관행, 탈피해야

건설사업에 가장 중요한 단계로 타당성조사를 꼽는다. 잘못된 타당성조사는 첫 단추를 잘못 채운 셔츠와 같다. 엉망진창 사업추진으로 성과품은 제기능을 발휘 못하고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대한민국 건설산업은 유난히 타당성조사가 많다. 종류만 해도 사전타당성조사, 예비타당성조사, 본타당성조사, 타당성재조사, 사업계획적정성검토, 사업계획적정성재검토 등으로 종류도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사업수행 부처가 기획재정부에 사업승인신청을 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 사전타당성조사다. 각 부처에서 승인을 요청한 사업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적정성평가와 사업추진여부, 투자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예비타당성조사다. 예비타당성조사가 국가균형발전사업 등을 이유로 면제된다면 정부의 예산반영을 위해 사업계획적정성검토를 한다. 그 다음 본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을 실시하고 만약 예타에서 확정된 사업비가 다음단계에서 20%이상 초과되면 적정성검토를 위한 타당성재조사를 한다. 또 사업계획적정성검토에서 확정된 예산까지 20%를 초과하면 사업계획적정성재검토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복잡다단한 타당성조사시스템은 글로벌시장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이렇게 힘들게 타당성조사를 하는데 향후 설계와 시공은 얼마나 타당성 있게 진행될까. 안타깝게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현실은 설계가 단계별로 진행될 때마다 설계내용과 사업비가 바뀐다. 결국 부실한 타당성조사는 시공과 유지보수 단계까지 영향을 미쳐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 막게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타당성조사가 포함된 기술지원인 TA에 대해 수주는커녕 접근도 못하는 이유다. 해외라면 단번에 끝날 타당성조사를 한국은 3~4단계에 걸쳐 수행하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엔지니어를 신뢰하지 않는 대한민국 관료로 인해 타당성조사가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0% 증액

대한민국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사업비를 확정하게 되면 통상 20%는 증액이 이뤄진다. 타당성조사가 문헌에 근거해 현장조사도 없이 공사비와 사업비를 확정하기 때문에 20% 수준에서는 증액을 허용하는 것이다. 애초에 타당성조사자체가 저비용으로 발주해서 부실이 예견되니까 허용범위를 둔 셈이다. 예를들어 총사업비가 당초 3,000억원이었다면 총사업비관리지침에 의해 600억원까지는 증액되는 것이다. 지자체 등 사업수행부처는 예비타당성조사에 의해 사업시행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숨만 죽이고 있다가 사업시행이 확정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관광자원활성화, 민원 등의 이유를 들면서 사업비 증액을 요구하여 20%이내의 증액을 받아내고, 사업비증액이 20%를 초과하면 타당성재조사를 통해 결국 20%이상 증액된 사업비도 관철시킨다.

최근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서울~양평간 고속도로만 해도 사업추진이 확정되자 진출입로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봇물처럼 일어나면서 문제가 불거진바 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의 사업비 증액은 타당성조사 단계에서 현장조사비를 더 투입해 기술검토를 충분히 한다면 발생하지 않는다. 초기단계에서 20억~30억원만 쓰면 600억원 이상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타당성조사단계에서 주민참여와 상세한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정확한 사업비 산출과 경제성 분석을 통해 타당성이 없으면 매몰비용이 발생해도 사업을 중단한다. 이후 여러 대안을 검토해 십수년에 걸쳐 타당성조사를 5~6회 가량 펼친다. 30억원 규모의 타당성조사를 6번이나 수행해도 180억원 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제대로 조사를 한다면 6번까지 할 필요도 없다. 대충 실행한 타당성검토로 인해 600억원의 손해를 보는 것보다 효율적인 셈이다.

결국 사업비 확정전에 문헌조사식 겉핥기 사전타당성,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는 현재의 조사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 사전타당성조사단계에서 현장조사와 주민설명회를 충실히 수행해 기술적타당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예비타당성검토를 통해 사업비를 확정해야 한다. 특히 주민설명회는 사업확정전에 이뤄져야 주민들도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지 못한다. 이 방식이 글로벌스탠다드이고, 글로벌TA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설계차별화 한다며 일관성 내다버린 한국

철저한 현장조사를 토대로 사전타당성조사를 실시했다면 본타당성조사는 생략해도 된다. 인력과 예산이 중복으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물론 70~80km 정도의 장대 노선축의 경우 일괄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해 사업추진을 확정한 뒤 노선대내의 구간별 세부검토가 필요하므로 이 경우에는 구간별, 구역별로 예비타당성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사업추진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사전타당성조사에서 실시설계까지 계획사항과 설계내용이 반드시 일관돼야 한다. 사전타당조사에서 수립된 계획과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확정된 사업비는 변경되면 안된다. 하지만 한국 엔지니어어링은 각 단계별로 수행하는 엔지니어링사가 바뀌면 전단계와 설계 차별화를 이유로 전단계와 전혀 다른 설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사가 타당성조사에서 NATM 터널을 계획했는데, B사는 기본설계에서 TBM으로 다시 C사는 실시설계에서 NATM으로 설계하는 식이다. 결국 C사는 NATM에 대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당연히 시간에 쫓기게 되고 투입인력을 두 배로 늘릴 수밖에 없다. 결국 프로젝트는 적자가 되고, 공사비는 증액된다.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A사가 타당성조사에서 현장조사와 기술검토를 통해 NATM 터널을 계획했다면, B사는 기본설계에서 NATM에 대한 주요방침과 세부방침을 결정해야 한다. C사는 앞단계에서 결정된 방침에 따라 실시설계에서 NATM터널의 도면과 수량산출서, 시방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단계 조사나 설계내용을 바꾸지 않으면 실력없는 엔지니어링사로 폄훼되는 풍토가 있다. 해외에서는 전단계의 내용을 바꾸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단지 단계가 진행될 때마다 점점 더 세부적으로 검토하고 설계를 하는 것 뿐이다.

▲시공 최우선 관행 버려야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타당성조사가 겉핥기식으로 수행됐던 것은 개발시대에 시공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업을 구상하면 무조건 타당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추진했다. 타당성조사가 형식적으로 된 것도 개발시대 공무원들의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연유다. 당연히 개발시대 사업은 사업계획과 조사는 소홀이하면서 시공과 시공을 위한 실시설계만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국격에 맞게 실시설계와 시공보다는 앞단의 기본설계-FEED를 중요시해야 한다. 당연히 기본설계보다는 타당성조사가 중요하고, 타당성조사보다는 사전타당성조사가 더 중요하다. 특히 가장 앞단인 사전타당성조사에 선진국 수준의 합리적인 예산을 책정해야 예산낭비를 막고 사업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컨설팅-엔지니어링의 가치가 선진국처럼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공사비증액용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타당성조사는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수적이다. 타당성조사 또한 글로벌스탠다드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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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2023-10-12 12:57:49
기득권 엔지니어링사 모두 반성

허선이 2023-10-11 17:30:42
불도저 같아. 밀어붙이는 건 이렇게 하는거지. 화이팅이예요.

그릿 2023-10-11 13:49:56
정기자님이 타당성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엔지니어링 임원보다 문제점을 더 꿰뚫어 보는 것같다.
부끄럽다.

오필승 2023-10-11 13:31:19
30억을 투자하면 600억원이되네

엔지니어링 2023-10-11 13:20:37
우리 타당성 조사는 그냥 절차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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