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돈나의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무대에 갑자기 유령이 나타난다. 무대는 혼란에 빠져들고 유령은 크리스틴을 납치해 유유히 사라진다. 극장 지하호수를 건너며 유령이 부르는 ‘밤의 노래’ 그리고 크리스틴과 라울의 이중창으로 오페라는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극장 지하에 호수라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천사의 목소리를 타고났지만 화상 때문에 꿈을 접은 팬텀,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팬텀이 가르치는 크리스틴, ‘오페라의 유령’은 이 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엔드류 웨버(A.L. Webber)의 작품이다.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려하게 펼쳐지는 이 오페레타는 극장 자체가 극이 진행되는 무대라는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도시 전체가 평탄한 지역에 놓여 있는 파리에서는 집을 지을 때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만들어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왕궁이나 성당 수도원은 물론이고 웬만한 건물 지하에 가보면 규모에 걸맞는 저수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역시 물 저장공간이 필요했을 테지만 이 거대한 저수조가 만들어진 배경은 사정이 좀 다르다.
거대한 저수조, 왜 만들었을까
오페라 하우스는 1860년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샤를 가르니에(C. Garnier)의 걸작이다. 하지만 당초 그가 설계한 오페라 하우스에는 저수조가 없었다. 이 시설은 터파기 공사 중 다량의 지하수가 분출되자 임시응변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지하수는 퍼내면 퍼낸 만큼 계속 스며들지만 일단 지하수위까지 차오르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지하수위까지 물이 차오르도록 저수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예레바탄 지하저수조
아시아와 유럽 경계에 있는 이스탄불은 로마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 그리스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다. 395년 동로마의 수도가 된 뒤로는 전쟁이 그치지 않았지만 도시가 절벽에 둘려져 있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어 지형적으로 아주 유리하였다. 동로마가 1453년 멸망할 때까지 천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일 것이다.
이렇게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물 부족으로 늘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콘스탄티누스는 정착 직후 저수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무려 80년이 지나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이후 900년간 황실의 수조로 사용되다가 오스만 트루크에 의해 멸망된 뒤에는 진흙에 묻혀 있었다. 저수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7년이다.
왜 이렇게 화려할까
기독교는 로마를 장악한 뒤 이교도 신전을 조직적으로 파괴해 나갔다. 그리스 이집트의 아름다운 신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둥받침으로 사용한 매두사 두상 역시 다른 신전을 파괴하고 가져온 것이다. 두상을 거꾸로 놓은 것은 아마도 이교도를 모욕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저수조, 그러나 이 유적이 수많은 문화유산의 파괴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예루살렘의 갈증
지금도 옛 가옥에는 저수조가 남아 있는데 이곳으로는 빗물이 흘러들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가뭄이 지속되어 물이 떨어지면 사빌(Sabil)이라는 공공 급수장에서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의 수원지는 성 마리아 샘으로 불리는 기혼(Gihon)샘 뿐이다. 이 샘은 예루살렘의 생명수와도 같아 실로암을 비롯한 많은 못을 채워주었다.
최근 발견된 예루살렘 지하저수조는 BC.10세기경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판 것인지 석회암 동굴을 확장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부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이 지역에 자연 공동이 많다는 점에서 후자로 추측된다. 내부공간은 약 250㎥ 정도이며 벽면은 시멘트로 꼼꼼하게 발라 물이 세지 않도록 하였다. 벽면에는 아직 일하던 사람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공간 규모로 보아 이 저수조는 식수뿐 아니라 순례자들이 몸을 씻는 성소로도 쓰였을 것이다.
지하강, 현대의 저수시설
식수를 담아두려는 고대 저수조와는 달리 최근 저수조는 이렇게 홍수에 대비한 시설이다. 비가 많이 올 때 빗물을 담아두었다가 하천수위가 낮아지면 천천히 내보내려는 것이다. 동경이나 시카고 같은 평지도시는 자연배수가 어려워 이러한 시설이 꼭 필요하다. 이 시설은 도심 지하에 수로터널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방수로 또는 워낙 규모가 커서 지하강으로도 불린다.
일본 사이타마 저수조 역시 지하강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동경 인근의 나카천은 그리 많지 않은 비에도 제방이 넘쳐 홍수 피해를 입어왔다. 저수조는 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지하 70m 깊이에 만들어졌는데 폭 78m 높이 18m의 수로가 6.3km나 뻗어있다. 총 67만톤의 물을 담아둘 수 있는 이 시설이 완성되고 나서 나카천 인근은 홍수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일본은 오사카 신우지강 등 여러 곳에 방수로를 갖추고 있다.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
강우 대부분이 우기에 집중되고 기후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우리나라도 이제 물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물 부족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많은 도시처럼 지금 물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논점이 흐려지긴 했지만 미래의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평가와 깊이 있는 연구가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